김성호 기자 ([email protected])
수줍게 드러난 바다의 속살
그안에 생동하는 자연의 美
천연기념물 번식·풍부한 자원·바다 자정 등 가치 높아
조력발전소 건설땐 면적 30% ↓… 펜션건설에 ‘몸살’
해외선 국립공원 관리 반면 국내 행·재정적 지원 부족
지난 15일 오전 9시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강화갯벌센터 앞. 하루 두 번 찾아오는 간조 시간 바닷물이 모두 빠지자 드넓은 강화 남단 갯벌이 그 신기한 얼굴을 드러냈다.
곰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갯벌 바닥 위에는 이 곳에서 서식하는 각종 생물들이 쌓아놓은 흙 무더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이 빠진 갯벌은 눈을 길게 빼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흙을 주워 먹는 칠게들의 놀이터가 됐다.
오후 3시 만조에 즈음해 다시 찾은 이곳 갯벌은 바닷물로 뒤덮여 다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물이 덮인 갯벌 주변에는 몸을 숨긴 칠게 대신, 길고 휘어진 부리를 가진 멸종 위기종 알락꼬리마도요와 큰뒷부리도요, 민물도요 등의 철새 10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해무와 함께 바닷물이 점점 밀려 들어오자 새들도 조금씩 뭍으로 움직였다.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같은 멸종 위기종인 노랑부리백로의 모습도 발견됐다. 도심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 강화도 갯벌이 그야말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강화 갯벌의 가치
지난 2000년 7월 문화재청은 강화 갯벌을 천연기념물 419호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로 지정했다. 강화 갯벌이 저어새 번식지로서 중요하고 흑두루미나 도요새, 물떼새 등 주요 철새들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인 강화도의 갯벌 면적은 448㎢로 여의도 면적(2.9㎢)의 150배 크기로 광활하다.
강화 갯벌을 포함하는 서해 갯벌은 미국 동부의 조지아 연안, 캐나다 동부 연안,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 유럽 북해 연안의 갯벌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불린다. 서해 갯벌 가운데에서도 강화 갯벌은 한강·임진강·예성강 하구에 있는 전형적 하구 갯벌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갯벌에 비교해 중요도에서 차이가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 형성된 하구 갯벌은 일반 갯벌보다 더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갯벌은 또 바다 오염을 막는 생명의 허파 역할을 한다. 강화도 갯벌은 인천·경기·서울 등 수도권에서 뿜어내는 걸러내지 못한 오물을 바다로 나가기 전 1차로 걸러내는 완충 역할을 하며 서해가 더럽혀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
강화 갯벌이 없었다면 서해가 지금처럼 풍부한 어족 자원이 넘치는 바다가 되기 힘들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도권 등 육지부에서 내보내는 유기물은 미생물에게는 더없이 좋은 서식 환경이 된다.
갯벌에 미생물이 많으면 낙지, 조개, 지렁이 등 생물에게도 좋은 서식환경이 되는데, 이 미생물을 먹고 사는 어류나 최상위 포식자인 새들까지 여러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된다.
갯벌 생태학을 전공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최종관 박사는 “강화도의 갯벌은 수도권의 오물을 걸러내고, 또 한강·임진강·예성강의 하구에 있어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중요한 환경적·생태적·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강화 갯벌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화도 갯벌의 위협
이처럼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강화도 갯벌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강화도의 갯벌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는 수도권에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이다. 인천공항 건설사업 등 강화 인근 수도권에서 진행된 끊임없는 대형 개발사업과 개발계획 등은 갯벌을 직·간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다.
그나마 접경지역이란 점이 강화도에 대한 직접적인 개발을 일정 부분 막고 있어 버텨왔지만 이마저 사라진다면 엄청난 위협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갯벌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개발 사업으로는 대규모 조력발전 사업이 있다. 강화 남쪽의 인천만 조력발전 사업과 강화도 서쪽의 강화 주변 도서를 연결하는 강화 조력발전 계획 등이 갯벌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조력발전 사업은 갯벌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길을 막기 때문에 갯벌에 악영향을 끼친다. 발전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선 물길을 막는 대규모 둑 건설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물길의 변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현상으로 갯벌이 육지화 되거나 바닷물이 갯벌에 항상 고여있게 되는 호수화 현상이 발생한다.
담수화나 육지화는 갯벌 면적의 감소라는 의미와 같다. 만약 강화도 주변에 조력 발전 시설이 건설된다면 현재 인천의 갯벌 면적이 30% 이상 감소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인천시는 130억원의 예산을 들여 강화도와 동검도 사이의 갯벌(3.98㎢)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년 전 강화도 남단과 동검도 북단을 연결하는 350m 길이의 다리가 건설됐는데 다리가 생긴 이후에 바닷물이 통하지 못해 배가 다니는 갯골이 사라지고 갯벌이 오염되는 등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는 상황이 빚어지자 인천시가 바닷물이 통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350m길이의 둑을 만들고 불과 20년만에 다시 갯벌 복원 사업을 벌이겠다는 지금의 현실을 비추어보면 대규모 조력 발전 시설의 위험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는 강화도 해안 주변의 펜션도 강화도 갯벌의 잠재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은 “무엇보다 갯벌에 가장 큰 위협은 정부나 관에서 추진하는 합법적인 환경 파괴”라며 “수도권매립지와 청라지구 일대의 갯벌이 1984년 4월까지 두루미 도래지로 천연기념물 제257호였는데, 이곳이 관의 개발로 사라졌다는 점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갯벌 보존을 위한 방안
갯벌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에는 ‘강화갯벌센터’가 있다. 2005년 조성된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강화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소개하는 전시물과 이곳 갯벌과 철새를 조망할 수 있는 ‘관찰데크’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다.
이곳 갯벌센터는 시설 관리자 1명만 근무할 뿐, 강화 갯벌의 가치에 대해 체계적으로 안내하고 교육할 수 있는 인력은 없다. 최근 센터를 찾은 초등학생 100여명도 그저 벽에 걸린 전시물과 영상 자료를 관람할 뿐, 제대로 된 해설사나 전문 인력의 안내를 전혀 받을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화 갯벌의 가치를 알리고 체험할 수 있는 ‘앵커시설’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센터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강화 갯벌을 지자체에 맡겨 두기보다는 지금보다 잘 활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 5대 갯벌 대부분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강화 갯벌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면 독일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갯벌 국립공원(4,410㎢/1985년 지정), 니더작센 갯벌 국립공원(2,770㎢/1986년 지정), 함부르크 갯벌 국립공원(137㎢/1990년 지정) 등 3개의 국립공원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 갯벌 국립공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 NGO 등이 협력해 갯벌 자원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소득 증대로 확장한다.
또 국립공원을 핵심·완충·휴양지구 등 3단계 구역으로 설정·관리하며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주민공동체를 세우고 주민협약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해 공원관리에 적극참여하도록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니더작센과 슐레스비히-홀스타인 등 2곳의 연간 방문객이 270만명, 5조9천억원의 관광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인천발전연구원 조경두 박사는 “갯벌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서는 행·재정적 지원이 필요한데, 갯벌을 국립공원화할 경우 중앙 정부의 예산과 인력이 투입돼 갯벌을 보존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많다”며 “해당 지방자치 단체의 수장이 바뀌더라도 관리의 지속성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보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고 말했다.
원본기사 : http://www.kyeong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969199